프랑스-바이마르 공화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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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바이마르 공화국 관계 관련 틀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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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관련 사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부터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기 이전까지의 프랑스바이마르 공화국의 관계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2. 역사[편집]


1918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프랑스는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에 재기불능이라는 쐐기를 박고자 바이마르 공화국에 엄청난 전쟁배상금과 무장해제를 요구하였다. 프랑스는 보불전쟁에서 겪은 패배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바이마르 공화국에 돌려주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으로부터 알자스-로렌을 일방적으로 합병하였다.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지역을 합병한 데 이어 라인란트까지 합병하려고 했지만 이는 영국미국의 반대로 무마되었다.

베르사유 체제가 성립된 이후에도 프랑스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보복을 멈추지 않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쟁배상금 배상이 늦어지자, 프랑스는 1923년 독일의 공업지대인 루르를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그러나 알자스 지역에서는 프랑스의 동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고, 루르 점령도 바이마르 공화국 국민들의 강한 반발로 루르를 결국 바이마르 공화국에 돌려준다. 또한 프랑스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1924 파리 올림픽 참여를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독일에 대한 분노를 머금었다.

프랑스의 대독 강경정책에 미국과 영국이 반대하면서 프랑스는 결국 로카르노 조약 체결 등을 통해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프랑스와 바이마르 공화국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이어졌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1929년 미국발 대공황으로 인해 프랑스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는 완전히 박살이 났고 양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일어났고, 특히 독일은 1933년 수권법이 통과되면서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다.


3. 관련 사건[편집]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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